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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APPLE Geek Bible

맥프로에 대한 단상

 어째 WWDC 2013 단상 시리즈가 된 것 같지만, 어제 'iOS7에 대한 단상'에 이어 맥프로에 대한 단상을 풀어내고자 합니다. 생각보다 풀어내는 방법이 마음에 들어서 매번 이렇게 가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어쨌든 시작합니다.






맥프로에 대한 단상



 새로운 맥프로는 출시되자마자 여러 가지 별명을 달았습니다. 쓰레기통이나 보온 도시락, 연탄, R2-D2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만큼 디자인이 충격적이었고, 아마 처음 본 사람에게 무엇이냐 물으면 '컴퓨터'라는 대답은 뒷면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어렵겠죠.




논란



 원통 디자인을 하면서 완전히 기존 PC 구조를 상실했습니다. G4 큐브가 떠올라서 뭔가 불안해 보이기도 하지만, 기존 PC 구조에서 발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삼각형으로 기판을 배치하고 열을 중앙으로 모아 상단의 쿨링팬 하나로 굴뚝처럼 열을 뿜어내도록 설계되어 단순히 디자인만을 먼저 고려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적어도 큐브의 경험이 도움되었겠죠.

 디자인은 그렇다 치고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 '확장성'입니다. 보통 컴퓨터들이 성능 비교가 우선인 것과 다르게 워크스테이션 제품으로써 확장성에 대한 논란이 더 크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도 보통 확장성은 워크스테이션 제품들이 기본적으로 내세우는 강점인데, 그걸 싹둑 잘라내면서 논란으로 이어집니다.

 이미 WWDC 전에 맥프로의 확장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소식이 있었기에 기존 맥프로 사용자들이 각오는 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정책적인 면이 아니라 아예 디자인으로 내부 확장을 할 수 없도록 굳어버렸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소음과 발열을 잡고, 내부 확장은 버렸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아니, 맥프로를 실내 장식용으로 사용할 것도 아닌데 왜 확장성을 버리고 디자인을 저렇게 해놓았냐?!'



확장성


 재미있는 것은 꼭 일반인이라 해서 디자인에 환호하고, 전문가라 해서 확장성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환영하는 반응과 그렇지 않은 반응으로 나뉘는데, 구형 맥프로는 4개의 PCI 슬롯과 최대 4개까지 저장장치를 추가할 수 있었고, 최대 8개의 슬롯을 제공해 내부 확장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신형 맥프로는 이런 내부 확장이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맥프로 사용자 중 본체를 교체하고 기존 장비들로 확장성을 유지하면서 사용하던 사용자에게는 기존 맥프로와 완전히 동떨어진 제품이 되었고, 새로 구성할 필요가 있는 불편이 따릅니다. 반대로 환영하는 쪽에서는 외부 확장을 얘기합니다. 맥프로는 내부 확장성을 완전히 배제한 대신 썬더볼트 포트 6개를 제공합니다. 넉넉한 대역폭의 썬더볼트로 외부 확장성은 훨씬 좋아졌죠. 그러니까 외부 확장을 위한 썬더볼트 장비로 교체해서 맥프로와 연결하기만 하면 확장성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PCI 슬롯 4개보다 썬더볼트 6개가 나은 확장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대신 썬더볼트 케이블을 주렁주렁 달고 있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겠죠. 내부 확장처럼 본체에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은 힘듭니다만, 발열과 소음문제, 그리고 성능이 올랐고, 작은 크기에서 내부 확장성보다 만족감을 더 찾는 것입니다.


 슬롯이 어떻고 장비가 어떻고 주렁주렁하고 뭐 이런 얘기는 복잡합니다. 딱 이 문제를 바라볼 때 전문가든 일반인이든 드는 한가지 생각은 '돈'입니다. 결과적으로 맥프로를 구매하고 기존의 작업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썬더볼트 지원 제품을 구매해야 하는데, 이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맥프로를 여러 대 사용하는 곳에서는 이 장비를 전부 교체하는 것에 상당한 비용이 들 것이며, 그렇다고 완벽히 지원하는 제품의 선택폭이 아직은 매우 좁습니다. 썬더볼트용 장비 시장이 그리 크지도 않은데다, 적극 채용하는 곳이 애플 뿐이다 보니 보급에서 속도가 나질 않습니다. 그러니까 폭넓어진 외부 확장성과 부가적인 성능, 디자인 등에 만족을 하거나 완벽하지 않은 외부 호환성에 불확실한 썬더볼트의 미래, 그리고 이용에 불만족하거나 둘이 맞붙는 것입니다. 사실 결론은 '돈이 많으면 모두 다 한다'겠지만, 현실성에 부딪히니 강제성을 띄게 되고 여기서 반발이 일어납니다.




의도




 이런 제품을 내놓은 애플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애플은 아마 맥프로를 중앙에 두고 거기에 단지 썬더볼트를 연결하는 것만으로 확장성을 키우는 방식을 구상했을 겁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다음 맥프로가 나오더라도 새 본체에 기존 썬더볼트만 연결해서 확장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게 하고, 외부 장비, 예를 들어 PCI 박스를 썬더볼트로 연결해두고 부품만 교체하는 식으로 작업환경을 구축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기존 장비들이 맥프로의 파츠에 자리잡고 있었다면, 맥프로를 작업환경의 한 파츠로 자리하게끔 했습니다. 그리고 외부 확장성을 넓히면서 기존 PC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인 발열과 소음을 해결하고자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입니다.

 그러니까 디자인을 위해 내부 확장성을 배제한 것이 아니라 외부 확장이 썬더볼트로 가능해진 시점이 되자 외부 확장으로 전부 돌려놓고 기존 PC의 구조를 완전히 뒤바꾸는 혁신에 들어간 것입니다. 사실 기존의 워크스테이션 제품의 형태는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애초 맥프로와 같은 굴뚝 모양의 컨셉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확장성의 문제로 실제 제품화하는 짓은 굉장히 멍청한 것이었습니다. 애플이 썬더볼트 이전 맥북프로에 확장성을 강조하고, 확장에 쉽도록 디자인한 이유도 외부 확장으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썬더볼트의 등장으로 내부 확장성을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되자, 확장성의 문제는 모두 썬더볼트에 몰아버리고 그 외의 다른 문제에 집중합니다. 그 결과물이 맥프로입니다.

 워크스테이션 시장의 특성상 상당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또한 당연하게도 비용의 문제지만, 큰 비용을 낸 만큼 오랜 시간 사용한다는 점 때문에 제조사에서 지금 같은 컴퓨터 디자인을 고수하는 것은 불가항력이었습니다. 안 팔리니까요. 하기 싫어서 안 한 것이 아니라 못 한거죠. 그 때문에 워크스테이션 시장도 마치 조립PC를 사고파는 것처럼 바뀝니다. 그래서 컴퓨터의 형태보다는 지원하는 영역에 더 많은 투자를 PC 회사들이 하게 되죠. 그런데 맥프로는 그래 왔던 시장 상황을 완전히 깨버린 제품입니다. 확장성을 PC 제조사가 무조건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PC라는 온전한 제품 하나에 모든 생각을 집어넣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PC 시장의 전체적인 역사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




맥프로


 물론 '애플의 의도는 완벽한데 돈이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워크스테이션 제품은 비용도 비용이지만 '안정성'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안정성이 먼저고, 그다음이 비용입니다. 하지만 내부 확장이 아니라 외부 확장을 통해 완벽한 안정성을 보장 받는다는 것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새로운 맥프로에 비용을 낼 수 없습니다. 데이지 체인을 사용하면 36개의 썬더볼트 연결이 가능한데, 그렇게 그물망처럼 얽혀있는 장비들이 문제없이 안정적일 수 있느냐는 의문을 던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점에 있어선 애플이 너무 앞서 간 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애플이 보장하는 썬더볼트 장비가 고르게 있는 것도 아니므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워크스테이션 사용자들은 조심스러운 것이고, 그 조심스러움이 불만으로 표출됩니다.


 하지만 애플은 이미 저질렀습니다. 애플의 의도를 보면 한동안 이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새 맥프로도 큰 탈이 없는 이상 이런 컨셉의 제품이 나올 확률이 높죠. 큰 탈이라고 한다면 아직 검증되지 않은 발열 문제나 내구성, 썬더볼트 사장 정도 가 되겠네요. 애플은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서 맥프로에 불만을 가진 소비자들보다 그렇지 않고 환영하고 있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계속 접근해야 합니다. 그리고 썬더볼트 시장의 활성화와 그리고 인한 안정선 검증이 이뤄진다면, 불만을 잠식시키고 애플이 원하는 바대로 PC 시장을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야 애플은 오랜 시간의 PC 시장을 뒤집는 한 축을 긋는 것이 될테지만요.


 필자는 다른 것보다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박수를 보냅니다. 누구는 아전인수라고 얘기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걸 떠나서 자신들의 의도만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무엇인가 뒤집어 내려고 하는 그 자체만으로 애플이라는 이름에 걸맞으며,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애플일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